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저런 사랑이 하고파 하게 된 구체적인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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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저런 사랑이 하고파 하게 된 구체적인 생각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동은 스포일러 따위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직접 보지 않는다면 절대 알 수 없는 감동이다. -호모루덴스 추천사

너와 난 그 시절,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분들의 사랑을 보면서 나의 사랑을 돌아보게 된다. 할어버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나이때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그 외롭고 힘든 삶이 결국엔 소중함에 대한 애정을 만들었다고 본다. 할아버지는 가난, 부모님 사랑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 자주 말하는 혼자 잘 설 수 있고 잘 살아간다면 좋은 짝을 만날 수 있고, 서로에게 결핍된 것을 보상 받으려는 행동보다는 나누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 말도 맞지만 혼자 잘 선다는 것 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게다가 연애를 많이 하면 좋은 짝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니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린 시절에 만나 결혼을 했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게 서로를 아낄 수 있는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저런 사랑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된 노력일까? 노력이라면 어떤 노력을 하면 저런 사랑에 도달 할 수 있을까? 그 분들은 밀당이나 서로의 마음을 떠보고 견주는 썸도 없었을 것이다. 어찌 저렇게 사랑스러운 동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사랑에 목말라하고 모든 이들이 감동 받는 이유가 가끔씩 나타나는 천재와 같이 가끔 있는 우연의 결과가 아닌가 추측해본다. 딱 한번만 사귀어보고도, 서로를 위해주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항상 위해주는 마음을 내고 있다는 것은 이 분들에게는 행운이었던 것이 아닐까. 할아버지, 할머니 시절에 수많은 부부가 탄생했을 것이고, 비슷한 환경을 겪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이들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한마디로 서로를 만난 건 복 받은 소수의 경우처럼 희소하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면 우리, 그리고 나의 사랑은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게도 희망이 있어야 하니까.답은처음에 언급한 말에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상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상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자기 수련처럼 매일 일깨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남편과 이렇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잘 해야겠다, 진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사랑을 하고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등 모두 눈물을 흘리거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담아갔다. 이 영화를 봄으로해서 잊고 있던 사랑의 기운을 다시금 일으켜세운 계기가 된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영화를 같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이상하지만 당연한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이야기 할 것이다. 왜 쓸데없이 영화를 보고 느꼈으면 그걸로 된거지 그걸 분석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알고 싶었다. 눈물을 흘린 이유 속에 내가 원하는 사랑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감동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으며, 알고 있어야 계속 노력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영화를 보다가 우리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은 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행위이다. 노래를 불러주면 할머니는 멋진 오빠를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어떤 반주도 없지만 할아버지의 노래소리는 실력을 떠나서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써 우리에게 감명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은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

아주 단순한 원리이지만 우리는 그 단순함을 잊고 산다. 너무 많은 기회와 가져야 한다는 마음때문에 진짜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러가는 날,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어머니랑 서둘러 준비했지만 서로의 약간의 실수로 인해 영화예매를 취소하는 과정에서 나는 서로가 조금씩 잘못한 것을 알지만 이렇게 된 상황이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났다. 게다가 영화예매 20분전에만 인터넷취소가 된다는 사실을 몰라서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결국 친절한 CGV전화상담원이 1분전에 매장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서 취소해주었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지만 취소과정은 얼마나 속이 타들어간지 모른다. 내 돈 12,000원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니 내가 너무 많은 걸 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영화를 보고 주말에 해야 하는 일들이 쌓아 두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의 배경처럼 자연의 모습을 가만히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자연에서는 우리가 본성을 찾고 기회의 찌꺼기를 벗어버릴 수 있게 해준다는 걸 느꼈다. 산이나 바다에 가서 가만히 동식물을 보거나, 먼 산을 보고 있으면 내 자신이 시원하고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원래의 나로 회복하는 자연(스스로 自, 그러할 然)스러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평소의 우리는 그럼 자연스럽지 않고 어떻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웰빙, 힐링을 외치면서 산과 바다, 자연을 찾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이들면서 뭔가를 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안타까운 것이 아니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회복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눈이 하얗다, 꽃이 이쁘네요 라는 말을 서로 나눌 수 있다. 눈이 하얗고 꽃이 이쁜 건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한 현상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 일하거나 육아과정, 집안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당연한 것을 표현할 정도로 에너지가 남아있거나 여유가 넘치지 않는다. 우리는 조금은 줄여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할머니의 생일잔칫날 딸과 큰아들은 크게 싸운다. 그들은 이미 묵혀놓은 감정을 폭발하게 되어 싸운다. 자식들은 돈버느라,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열심히 많은 일을해야 하기에부모님을 누가 좀 더 많이 모셨나로 싸웠다.

늙어가면 기력이 쇠하게 된다. 그러면서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영화에서 할아버지는 젊을 때는 가뿐히 들었을 큰거울을 들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화를 내고 욕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줄어든 기회만큼 작은 것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느리게 사는 삶을 살아가신다. 그 분들은 군것질하지 않고, 계절마다 새 옷을 사지 않는다. 좀 더 좋은 집에서 살지 않고, 매달 10만원에 육박하는 통신비도 내지 않는다. 그들의 소비크기와 우리의 소비크기는 많은 간격이 있다. 하지만 젊은이는 그 시기의 삶의 형태가 있고, 나이든 노인들은 그들만의 삶의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나면 자녀교육비는 사라진다.

나이든다는 건, 죽어간다는 건 소중한 것들과 안녕이란 말을 하면서 이별하는 과정인 것 같다. 할아버지가 노쇠하셔서 몸을 가누지 못하실때 자녀들이 찾아와서 안부를 전하고 이별인사를 전하는 모습에서 故김자옥 선생님이 암투병 중에 가장 힘이 됐다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혈압으로 쓰러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갑자기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들도 모르고 본인도 몰라서 아무 준비도 못하지요. 그런데 암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병입니다. 절망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더 나빠지면 그때를 대비해서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나, 가족에게 용서와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으니 암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어요. 이별하는 과정을 나이가 들면서 노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가는 것 같다. 몸도 느려지고 생각도 느려지는 것, 그건 퇴화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색하겠지만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고 누릴 수 있는 걸 누려야 한다. 여기서 또 한번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활기가 있는 젊을 때는 알지 못하기에 저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시기적으로 젊을 때는 좀 더 활기를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 어차피 늙으면 느리게 살게 된다. 그렇다고 젊을 때 자연에서 살고 느리게 산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 선택만큼 스스로를 누리고 책임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할머니는 6명의 자녀 외에 6명의 자녀를 잃었던 기억에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나는 가족의 사랑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게는 지금의 여동생 말고 두 명의 동생이 더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1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내가 보지 못한 두명의 동생들은 힘든 시절 안타깝게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사실을 알고 혼자 그 힘든 과정을 겪으셨던 어머니가안타까웠고, 옆에 있지 않았던 아버지가 야속했다. 그리고 내가 몰랐다는게 놀라웠다. 그 동생들에게 내가 미안하다. 너희의 삶만큼 열심히 산다는 말은 못해도 너희와 같은 아이들을 동생처럼 위하며 살것이다. 만일 있다면 옷도 사주고 힘들때 이야기도 들어주고 쓰다듬어주고 같이 장난도 치면서 꽃구경도 가고 같이 노래도 부르며 살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 곳에서 만난다면 꼭 그렇게함께하고 싶다.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심정은 그렇게 찢어지는 아픔일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어. 꿈에도 몰랐어. 다신 못보겠네. 꼬마가 가고 할아버지도 가겠지. 그러면 나도 따라 가겠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자 이렇게 인생의 한탄을 읊조리신다. 할아버지는 옛날과 다르게 지게지는 것이 힘들고, 할머니에게 잘 해주고 싶어도 무릎만 만져줄 수 밖에 없는 나이든 남자이다. 나이든 남자는 젊을 때 기력을 다써서 그런지 생태주기상 늙어서 여자보다 더 빨리 힘을 잃어간다. 평균 연령만 봐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산다. 하지만 누가 먼저가는게 그렇게 더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아직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젊다. 지금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사랑의 누적으로 인해 노년의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혼자 일때는 급하게 빨리 걷는다. 하지만 연애를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걸음을 맞추게 된다. 아니, 맞춰주고 싶어진다. 오래토록 함께 걷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디를 갈때마다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다. 나도 그냥 잘해주고 싶고, 같이 있으면 행복한 연애가 그립다. 보고 싶더라도 참아야해. 나도 보고싶어도 참는거야. 할아버지를 잃고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현재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신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내 앞자리에서 중년부부와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가 서로 다른 움직임으로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는 어디가시고 아들부부와 왔을까. 집에 있을 수도 있고, 먼저 자연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이순간만큼은 혼자다. 혼자라서 더 추운 겨울이라 말하지만 현재 솔로인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더라도 묵묵히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하고 싶은이를 찾아갈 것이다. 영화관에서 우는 남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80,90년대의 영화관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슬픈 일이 있어도 참아야 했던 남자들의 감정회복현상이 아닐까. 나 또한 슬픈 영화를 보면 많이 울고 감정이 넘실대는 남자이지만 그 감정에 솔직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도 솔직하게 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시린 손을 호~호~불어줬던 것처럼, 자다가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었던 것처럼, 꽃을 꺽어 선물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 가득 담고서.

처음에 출발했던 생각을 다시 꺼내본다. 과연 사랑은 노력인가, 운명인가. 나는 항상 스스로를 일깨우는 사랑하는 습관이라 생각한다. 글 : 호모루덴스 사진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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