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틸 - [Shawn Levy - Real Steel] 그래도 사람은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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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 Levy - Real Steel] 그래도 사람은 아프지 않다
리얼 스틸 전형적이고 뻔한 헐리웃 스토리.
폭력적이고 미국적인 문화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사실 그다지 분석하거나 따져볼 필요가 없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냥 재밌다, 아무생각없이 시간떼우기 좋은 영화다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갑자기 이 영화에 대해서 뭐라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습관때문이기도 하겠고,
오랜만에 어렵사리 영화를 봤는데 그냥 넘어가기 싫었던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어쨋거나 이제부터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끄적거리며 내용을 정리해본다.

이 영화는 우선 영화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개연성 등을 따지자면 문제점을 지적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2020년인데 왜 지금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느냐
2020년이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런 로봇기술이 가능한 것이냐
음성인식, 동작복제 기능은 주인공들만 따라하고, 왜 일부 장면에서는 제대로 따라하지 않느냐
맥스가 처음 아톰을 데리고 벌인 대결에서 이겼을 때 상대편인 불량배는 왜 굳이 약속을 지키느냐
그외 수많은 상식적인 논란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논하는 것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독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요소들은 다 논외시켜버리고
모든 포커스를 배경과 인과관계가 아닌 등장인물에게만 집중하도록 했다.

그래서 기술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편집과 카메라웍으로 기술적 논쟁을 피해버리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기초 위에 캐릭터를 살짝 얹는 방식을 택했다.

만약 이 영화가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블럭버스터였다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겠지만,
이 영화의 소재 상 좀더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선과 악으로 대립시켜서 플롯을 간소화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영화니까 이해한다는 암묵적 동의로 상쇄해버리고 나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피곤해하지 않을 적당한 수준의 헐리웃 영화가 탄생하는 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단순한 플롯에 생명을 불어넣을 디테일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

또다시 뭉뚱그려진 대표 이미지를 가져다 그 디테일을 대체해버린다.

일본으로 대변되는 자본, 기술, 기계집약, 물질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닌텐도와 사무라이.
이에 맞서는 쪽으로는 미국냄새가 짙게 풍기는 권투와 투박한 인간미 그리고 가족.

이 두개의 대표이미지를 선과 악으로 각각 대입시킨 후
악한 쪽은 그저 나쁜 놈이라는 단순한 이미지로 끝내버리고,
선한 쪽은 한 레벨 정도 더 내려간 일차원적인 디테일로 전개해나간다.

이 영화의 주요 타깃이 영화 록키에 열광한 부모세대와 그 자녀들이기에
록키의 모델인 권투, 오래되고 낡은 체육관과 링, 오래된 신문기사가 등장하고
다시 지금 현재와의 접점을 위해 컴퓨터 게임과 격투기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정말로 끊임없이 기존에 검증된 헐리웃 스타일을 따라간다.

여기서 등장한 오래된 체육관은 기존 영화에서 수도없이 재생해서 갖다 쓰던 이미지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Cars.에서 과거 피스톤컵을 차지한 유명한 카레이서가 시골에 숨어서 지내는 것과 같은 설정이고,
록키 발보아에서 등장하는 매니저(늙고 직장도 잃고 가족과 헤어진)와도 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늘 먹히는 헐리웃식 흥행방식이다.

여기서는 그저 차이가 있다면, 그 대상이 됐어야 할 트레이너는 죽고 그 딸이 대신 지키고 있으며,
그 딸은 우리의 서부식 건달 hero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차암 이렇게 쉽고 편할 수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게 또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마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효과를 가져와서
요즘 아이들에게 컴퓨터 게임이나 다른 놀이들로는 채워줄 수 없는 것들을 우리 어른들은 알고 있고,
그런 갈증은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지지한다는 거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보는 아빠들의 뒤에 숨은 감정에 안도감을 주고
역시 그래도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입맛을 쩝쩝 다시며 연설할 수 있게 해준다.
이건 마초적인 남성들의 알량한 희망이자 잔존한 자존심을 살살 건드려 주는 일종의 보너스인 셈이다.

그래서 실제로 아빠들은 이 영화를 본 뒤

컴퓨터게임이나 다른 것들로 채울 수 없는 그 어떤 것.
그 어떤 것이 바로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이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질거다.

그건 어찌보면 구식의 소통방식이고 오래된 정답이다.

이게 또 중요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겠으나,
이 헐리웃 영화에서는 이건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일종의 안정장치이며,
이 영화를 보는 나는 그저 단순히 오락물을 골라서 시간만 때우는 Time Killer가 아니라
이런 휴머니즘을 공감하고 내 아이들에게 설파하는 좋은 아빠라는 논리를 스스로 만들게끔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빠들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이 영화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아내와 사회에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안정장치를 제공한다.

그 안전장치는 이 영화에서 아주 잘 작동하고,
또한 다른 헐리웃 영황에서도 다시 잘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딱 거기까지다.
그렇게 기획됐고
그렇게 짜여져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영화의 가장 주된 요소인 흥행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로봇설계자인 일본인은 사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텍사스의 멍청하고 천박한 백인은 주먹이나 쓰고,
겜블링하는 흑인은 딱 생긴 것만큼 돈과 의리에 충실하고,
모든 것들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고 싶어하는 돈 많은 유럽인들은 자신의 고고함과 자존심을 잃어버리기 싫어하고,

이 모든 걸 이겨내는 hero는 비록 껄렁하지만, 자기 자존심이 살아있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류의 옛 영웅이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진짜 hero는 거기에 잇지 않고 바로 그 다음에 있다는 걸 슬쩍 보여준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희망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고 깨어 있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감성을 잘 이어받은 백인아이에게 있다는 거다.

마치 그 아이가 자라서
인디펜던스데이의 공군조종사 출신 대통령이 되어 전세계를 구하게 되는 그런 거 말이다.

인디펜던스데이를 보고난 뒤
왠지 입맛을 쩝쩝 다시게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래 니네 잘났다.. 이 정도를 툭 내뱉게 하는 수준의 영화.


그런데 그거는 아는지 모르겠다.

그 백인아이는 결국 직접 싸우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을 대신해서 싸울 로봇을 찾아냈고, 싸울 방법만 생각했고, 로봇을 조종하기만 했다.

자기는 공격만하고 하나도 다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말이다.
설혹 로봇이 다치거나 아프면 돈 받고 팔아버리고 다시 다른 걸 사면 되는거다.

그 로봇들이 혹시 우리들이 아닐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영화에서 등장한 노이지보이가 다시 옛영광을 살리려고 나섰다가 처절히 부서지고
결국 전리품으로 끝난 것처럼 말이다.
(아마 미국한테 일본은 딱 그정도일거다.)

영화보고선 생각이 이상하게 갔다.
영화볼 때는 전혀 이런 거 떠올리지 않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 나 혼자서 막 영화를 해체해버리고 내 맘대로 편집해버린 꼴이다.

사실 난 이 영화의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고 싶었다.

어퍼컷! 그래도 사람은 아프지 않다.
선종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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