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 상실의 시대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젊은 날의 레퀴엠

작성자 정보

  • 상실의 시대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상실의 시대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젊은 날의 레퀴엠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젊은 날의 레퀴엠- 원작이 너무나도 유명한 베스트셀러여서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다 게다가 감독은 세계적인 트란 안홍 감독(그린 파파야 향기,시클로)이다 드디어 4월 21일 날 개봉했다.

1.원작과는 궤도가 다른 작품 우선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작품이 아닌 트란 안 홍씨의 작품이란 걸 말이다. 소설을 상당한 분량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 러닝타임에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역시 영화는 원작의 포스에 근접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자세히보면 여러 단편영화들을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 원작을 의식해서인지 SHOWING의 기법보다는 TELLING에 중점을 두다보니 각 시퀀스들은 부유하게 된 것 같다. 2.영화화의 어려움 이 소설을 예전에 읽고 큰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나온다는 사실에 솔직히 우려가 되었다. 소설의 느낌을 살리자니 영화적 구조와 내용이 소실될 것 같았고 영화적 느낌을 살리자니 원작과는 궤도가 다른 괴작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을 소설에 너무 두다보니 영화적 특성이 사라지고 각 시퀀스의 논리적인 구조가 매우 느슨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 영화를 보고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를 만들기가 매우 힘든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노르웨이의 숲(원작)의 분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 러닝타임에 다 내용을 담으려고 하다보니 많은 내용이 축약되었고 인물들의 특성들이 소실되었다. 또, 원작 소설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영화는 전혀 살려주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감독에 의해서 다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독자를 위한 팬서비스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설의 인물구조와 디테일 그리고 인물들의 갈등구조가 사라져서 인물들의 행동의 개연성이 소멸되었다. 예를 들어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왜 사랑하는지 이 영화를 통해 알 수가 없다. 원작을 읽은 분이라면 알 수 있지만 원작을 읽지 않은 분은 난데없이 친구가 죽었는데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는 이상한 인물로 보일 수 있다. 후반부의 나오코가 왜 자꾸 나를 내버려두지 않냐?는 씬이 나오는데 원작을 안본 사람이라면 와타나베란 인물을 스토커로 볼 수 있다. 최근 개봉한 고백의 베르테르와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는 다른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최소 3부작 정도의 작품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대목이다. 4.재생을 위한 변주곡 소설을 읽으면 소설은 상실감과 고독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와타나베의 상실감을 주욱 이야기하다가 거의 마지막 부분의 재생을 이야기하니 너무 갑작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무언가 와타나베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계기가 있다거나 마음의 성찰을 얻지 않고서 재생을 이야기하니 축약된 작품이 더더욱 안스러워보였다. 마음의 괴로움을 안고 레이코를 만난 다음 재생을 이야기하니 주인공이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5.오시마 나기사 오시마 감독의 감각의 제국을 보면 주인공이 행진하는 일본군을 의식하며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성에 탐닉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제국주의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와타나베가 와세다의 전공투 학생속을 지나가는 모습이 두번 나오는데 이 모습은 무언가 느낌을 주지 않고 현실속에서 부유한다는 느낌을 어필하고 있었다. 물론 정체성에 대한 담론이 이 소설과 영화의 주제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너무 가볍게 처리된 것 같았다. 와타나베와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두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무게감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감독이 외국사람이니 이 시대의 일본 사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것 같았다. 그리스 희곡 수업시간의 학생과 교수의 대화는 무언가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지만 학생역을 맡은 두 배우의 과잉액션이 오히여 우스꽝스러워보였다. 다시 영화로 만들어지만다면 일본 국내 감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6.유토피아로서의 초원 초원이 나오는 씬이 자주 나온다. 초원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이상향(유토피아)이며 이 초원이 죽어가는 계절에 나오코는 자살을 맞이한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코,와타나베,기즈키가 초원에서 양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이러한 메타포를 함축하고 있다. 도시의 콘크리트에서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나오코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초원은 나오코의 순결함을 나타내며 와타나베가 기억하는 나오코가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존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이런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 까닮에 초원이 나오는 씬은 마크 리 촬영감독이 매우 세심하게 담아내려고 애를 쓴 것 같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오코의 긴 생 머리카락의 씬과 두 주인공의 풀밭에 묻힐 듯하면서도 묻히지 않는 모습에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는 씬은 매우 아름다웠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였지만 영화의 미장센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 절절하게도 아름다운 미장센을 뒷받침해주는 영화적 구조가 조금만 더 보완되었다면 더욱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인류보완계획

로그인 후 상실의 시대에 대한 FAQ를 등록해 주세요.

상실의 시대 관련 동영상

Thumbnail
Thumbnail
Thumbnail
Thumbnail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