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 지극히 봉준호스러운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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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봉준호스러운 옥자
옥자
애견인 천만시대인 요즈음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 그것이 강아지이든 고양이이든 아니면 색다른 애완동물이든 말이다.그런점에서 우리의 상식안에 있는 귀여운 동물이 아닌 거대한 괴물같은 옥자지만 미자에게 옥자는 다른이들이 아들딸과 같이 여기는 강아지들과 똑같은 존재이다. 산속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옥자에게 갓난아기 시절을 지나 자아라는게 생성되고 사고력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가장 남다르게 다가왔을 옥자이기에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대상인 것이다.
사실 영화라는게 주제들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결국은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옥자는 봉준호 특유의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소재로 사용했고 접근방식이나 스타일면에서 그것을 전형적인 헐리우드식이 아닌 봉준호만의 특별한 무언가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드러난다.
인상적이었던 씬 1#
역시나 반자본주의적인 주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첫번째 씬.후반기 옥자를 구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하던 미자일행은 도축장소까지 들어가서 옥자의 죽음앞에 처하지만 옥자의엄연한 소유주는 (주)미란다이다.그 씬에서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ALF리더 제이가아버지와 관련된 어쩌면 일반관객이 봤을 땐 엇 저건 아킬레스건인데싶은 자극적인 말도 서슴치않고 퍼부으며 그녀의 감정을 건드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CEO 낸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미자 또한 영어하나 할줄모르던 그녀가 짧은 시간에 수없이 외웠을 영어로 낸시의 감정에 호소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상징이자 CEO인 낸시는 그 어떤 모진 감성적인 말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건 결국 옥자와 어떤게 이득인가 저울질했을 때 오호 괜찮네 싶었던 황금돼지 한마리였다. 옥자는 왜 처음부터 황금돼지를 내밀지 않고 감성적으로 호소를 했을까??? 아마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미자의 바램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상적이었던 씬 2#
그렇게 낸시와 쇼부를 보고 나오던 옥자곁에 수많은 슈퍼돼지들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다 그 속에서 슈퍼돼지 한마리가 몰래 자기 새끼를 옥자와 미자 앞으로 던져놓고 옥자는 그 마음을 알아챈듯 그걸 몰래 숨겨서 빠져나온다. 그 뒤로 이어지는 슈퍼돼지들의 울부짖음.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 앞에서 그러한 동물들의 울부짖음이 더 쳐절하게 느껴졌다.
인상적이었던 씬 3#
그렇게 산골로 돌아온 옥자와 미자. 그리고 그 곁에는 나올 때 옥자가 몰래 숨겨온 새끼 돼지가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은 변한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 평화로울 뿐. 마치 현대자본주의의 간섭만 없다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다. 특별한 것 없이 그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준 마지막 엔딩씬 또한 상당히 남다르게 특별했다.
봉준호의 필모그라피
예전 박찬욱감독이 복수시리즈의 시작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며 투자를 받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철저히 대중적이고 관중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것을 함께 풀어나가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올드보이로 그해 대박을 터트렸고 후속작인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렇게 말한 있다. 지난 작품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작품을 했으니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차례다. 그런점에서 올드보이를 기대했던 많은 관객입장에서 복수시리즈의 종결편이었던 친절한 금자씨는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였다.
그 이후 행보도 상당히 박찬욱스럽게 쌓아갔으며 최근에 그 박찬욱마저도 어떻게 투자를 실패하지? 라는 의문을 남기며 투자실패로 영화를 접는 일까지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에게 있어 올드보이 같은 작품이 바로 괴물이 아닐까. 매작품들이 심사대에 오르게 되는 감독들에게 대중적인 커다란 성공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보험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옥자는 괴물보다는 관객에게 상당히 불친절하지만 봉준호 감독 본인에겐 훨씬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물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들의 기본베이스로 깔려있는 반자본주의적? 성향이 남들과는 다른 넷플릭스개봉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듯이 확실하게 기득권층을 매우 싫어하는 듯 하다. 하지만 세상은 80%의 대다수가 아닌 봉감독같은 20%의 남다른 소수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을까?



옥자
애견인 천만시대인 요즈음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 그것이 강아지이든 고양이이든 아니면 색다른 애완동물이든 말이다.그런점에서 우리의 상식안에 있는 귀여운 동물이 아닌 거대한 괴물같은 옥자지만 미자에게 옥자는 다른이들이 아들딸과 같이 여기는 강아지들과 똑같은 존재이다. 산속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옥자에게 갓난아기 시절을 지나 자아라는게 생성되고 사고력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가장 남다르게 다가왔을 옥자이기에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대상인 것이다.
사실 영화라는게 주제들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결국은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옥자는 봉준호 특유의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소재로 사용했고 접근방식이나 스타일면에서 그것을 전형적인 헐리우드식이 아닌 봉준호만의 특별한 무언가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드러난다.
인상적이었던 씬 1#
역시나 반자본주의적인 주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첫번째 씬.후반기 옥자를 구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하던 미자일행은 도축장소까지 들어가서 옥자의 죽음앞에 처하지만 옥자의엄연한 소유주는 (주)미란다이다.그 씬에서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ALF리더 제이가아버지와 관련된 어쩌면 일반관객이 봤을 땐 엇 저건 아킬레스건인데싶은 자극적인 말도 서슴치않고 퍼부으며 그녀의 감정을 건드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CEO 낸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미자 또한 영어하나 할줄모르던 그녀가 짧은 시간에 수없이 외웠을 영어로 낸시의 감정에 호소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상징이자 CEO인 낸시는 그 어떤 모진 감성적인 말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건 결국 옥자와 어떤게 이득인가 저울질했을 때 오호 괜찮네 싶었던 황금돼지 한마리였다. 옥자는 왜 처음부터 황금돼지를 내밀지 않고 감성적으로 호소를 했을까??? 아마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미자의 바램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상적이었던 씬 2#
그렇게 낸시와 쇼부를 보고 나오던 옥자곁에 수많은 슈퍼돼지들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다 그 속에서 슈퍼돼지 한마리가 몰래 자기 새끼를 옥자와 미자 앞으로 던져놓고 옥자는 그 마음을 알아챈듯 그걸 몰래 숨겨서 빠져나온다. 그 뒤로 이어지는 슈퍼돼지들의 울부짖음.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 앞에서 그러한 동물들의 울부짖음이 더 쳐절하게 느껴졌다.
인상적이었던 씬 3#
그렇게 산골로 돌아온 옥자와 미자. 그리고 그 곁에는 나올 때 옥자가 몰래 숨겨온 새끼 돼지가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은 변한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 평화로울 뿐. 마치 현대자본주의의 간섭만 없다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다. 특별한 것 없이 그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준 마지막 엔딩씬 또한 상당히 남다르게 특별했다.
봉준호의 필모그라피
예전 박찬욱감독이 복수시리즈의 시작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며 투자를 받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철저히 대중적이고 관중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것을 함께 풀어나가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올드보이로 그해 대박을 터트렸고 후속작인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렇게 말한 있다. 지난 작품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작품을 했으니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차례다. 그런점에서 올드보이를 기대했던 많은 관객입장에서 복수시리즈의 종결편이었던 친절한 금자씨는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였다.
그 이후 행보도 상당히 박찬욱스럽게 쌓아갔으며 최근에 그 박찬욱마저도 어떻게 투자를 실패하지? 라는 의문을 남기며 투자실패로 영화를 접는 일까지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에게 있어 올드보이 같은 작품이 바로 괴물이 아닐까. 매작품들이 심사대에 오르게 되는 감독들에게 대중적인 커다란 성공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보험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옥자는 괴물보다는 관객에게 상당히 불친절하지만 봉준호 감독 본인에겐 훨씬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물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들의 기본베이스로 깔려있는 반자본주의적? 성향이 남들과는 다른 넷플릭스개봉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듯이 확실하게 기득권층을 매우 싫어하는 듯 하다. 하지만 세상은 80%의 대다수가 아닌 봉감독같은 20%의 남다른 소수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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