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 최동훈, 암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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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암살, 2015
암살
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해 보자. 현재 한국 감독 중에서,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기대하는 긴장과 재미를 제 작품에 담아낼 수 있는 이는 최동훈이 유일하다. 시각적인 즐거움, 블록버스터의 그 거대한 스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 커녕 그의 영화는 제한된 공간을 맞물려 규모를 부풀리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다. 최동훈의 미덕은 이 공간과 시간과 인물과 사건을 의도적으로 쌓아올려, 그 끈덕진 긴장감으로 관객을 버티게 하고, 마침내 그 아슬아슬한 이야기의 건축물을 일순간 무너뜨리는 데 있다. 요컨대 그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철거의 미학을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완성시킨 감독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범죄의 재구성을 처음 보았을 때의, 산산히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최동훈 영화가 비판받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출세작인 범죄의 재구성 이후, 이어진 그의 작품은 각자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감독의 개성이 영화를 압도한다고 봐도 무방하겠지만(현재의 한국영화판에서 이러한 평가가 얼마나 큰 상찬인지!), 어쨌든 그는 특유의 연출로써 이를 최대한 영리하게 극복했다. 즉 과도하게 빠른 호흠과 (가장 진지한 순간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시나리오는 비슷한 접근방식을 취하는 감독(가장 유명한 예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에 비해 관객들을 쉬이 지치게 하지 않는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리어 이러한 개성이 도시적인 배경과 주제에 한하여 시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또한 팽배했다.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전우치는 어찌했든 고전소설을 각색한 작품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소위 경성시대를 다룬 한국 현대 영화 중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극히 적다. 내외부의 회의론을 동시에 마주하며, 암살이 완성되었다.
영화는 전형적인 최동훈식 영화, 그 중에서도 도둑들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상해와 만주의 독립군 요원들은 경성으로 찾아가 친일파와 일본군 사령관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러나 독립군이라는 설정은 지금껏 최동훈의 영화에서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새로운 질문을 가져온다. 미리 부연하자면,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민족주의 컴플렉스는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평단의 박한 평가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관객은 태왕사신기로 대표되는 엉터리 사극에 이미 면역되어(혹은 방역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 관객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치로 분별없지는 않다. 그보다 근본적인, 영화 내부에서의 질문은 이것이다: 독립군인 이상, 그들은 단순히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최동훈의 장기였던 빠른 진행은 온전히,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을 고의로 극 안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가능했었다. 그러나 암살은 어쨌든 실제 역사를 근거로 한 영화다. 그는 인물들을 지금까지처럼 멋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을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B급 헐리우드 영화마냥, 그리고 지금까지 좌절한 수많은 경성시대 영화처럼 진부하고 통속적인 폐허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갔는가?
놀랍게도 그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의도적으로 호흡을 빨리 가져가거나 이야기의 건축물을 촘촘히 쌓는 대신, 그저 이야기의 스피드를 늦추기만 한 것이다. 안옥윤과 속사포와 황덕삼은 타겟을 죽이기 위해 경성에 도착한다. 타겟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하와이 피스톨을 고용한다. 염석진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경성으로 향한다. 경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는 독립군이 작전을 실행하는 장면을 퍽 이른 시간에 보여준다. 이것은 호흡이 빠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순조롭게 이야기가 진행된 나머지 필요없는 장면을 걷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독립군의 암살작전 장면에 이르자, 이러한 장르에서는 당연히 등장했어야 했던, 그러나 영화가 그 때까지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시대의 개입이 시작된다. 요컨대 얼기설기 짜인 이야기의 건축물 뼈대에 우연성이라는, 지금까지 최동훈 영화에서 깊게 사용하지 않았던 시멘트를 들이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시멘트가 부어지는 순간 영화는 문득 진지해진다.한 가지 예를 들자. 안옥윤의 사건을 보며 범죄의 재구성을 연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둘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혀 유사하지 않다. 박신양은 필연적이지만, 전지현은 우연적이다. 박신양은 자신을 퇴장시킬 수 있었지만, 전지현은 타인을 강제로 퇴장당한다. 그런데 이 퇴장의 순간부터, 그(안옥윤)는 갑자기 수동적으로 변하여, 이야기 속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영화의 다른 인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요컨대 영화의 절반이 지나면서부터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그동안 최동훈 영화에서 그러했듯이) 이해타산에 따라 피동적으로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일제 치하의 시대에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지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결국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와 우연의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맞긴 이뿐이다. 좀 많이 나아가면, 우리는 영화 후반부의 맥빠진 변신으로부터 식민지 국민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원초적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만약 시대에 대항해 실패했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각기 다른 해답과, 각기 다른 운명들.
최동훈은 경성시대에 대해 관객이 갖고 있는 통속성과 무게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도 매몰되지 않았고, 그 결과 상업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의미한 장치로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들, 예컨대 비현실적이라거나 뜨겁지 않다라거나 역사극으로서 부족하다는 반응은 도리어 이 영화에 대한 상찬이다. 내가 아는 한 암살은 일제시대와 독립군에 대해 한국 영화가 지금껏 내놓은 것 중, 가장 멀리 나아간 답변 중 하나다.
암살 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개봉 2015 대한민국 평점 리뷰보기
c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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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해 보자. 현재 한국 감독 중에서,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기대하는 긴장과 재미를 제 작품에 담아낼 수 있는 이는 최동훈이 유일하다. 시각적인 즐거움, 블록버스터의 그 거대한 스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 커녕 그의 영화는 제한된 공간을 맞물려 규모를 부풀리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다. 최동훈의 미덕은 이 공간과 시간과 인물과 사건을 의도적으로 쌓아올려, 그 끈덕진 긴장감으로 관객을 버티게 하고, 마침내 그 아슬아슬한 이야기의 건축물을 일순간 무너뜨리는 데 있다. 요컨대 그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철거의 미학을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완성시킨 감독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범죄의 재구성을 처음 보았을 때의, 산산히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최동훈 영화가 비판받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출세작인 범죄의 재구성 이후, 이어진 그의 작품은 각자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감독의 개성이 영화를 압도한다고 봐도 무방하겠지만(현재의 한국영화판에서 이러한 평가가 얼마나 큰 상찬인지!), 어쨌든 그는 특유의 연출로써 이를 최대한 영리하게 극복했다. 즉 과도하게 빠른 호흠과 (가장 진지한 순간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시나리오는 비슷한 접근방식을 취하는 감독(가장 유명한 예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에 비해 관객들을 쉬이 지치게 하지 않는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리어 이러한 개성이 도시적인 배경과 주제에 한하여 시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또한 팽배했다.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전우치는 어찌했든 고전소설을 각색한 작품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소위 경성시대를 다룬 한국 현대 영화 중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극히 적다. 내외부의 회의론을 동시에 마주하며, 암살이 완성되었다.
영화는 전형적인 최동훈식 영화, 그 중에서도 도둑들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상해와 만주의 독립군 요원들은 경성으로 찾아가 친일파와 일본군 사령관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러나 독립군이라는 설정은 지금껏 최동훈의 영화에서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새로운 질문을 가져온다. 미리 부연하자면,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민족주의 컴플렉스는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평단의 박한 평가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관객은 태왕사신기로 대표되는 엉터리 사극에 이미 면역되어(혹은 방역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 관객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치로 분별없지는 않다. 그보다 근본적인, 영화 내부에서의 질문은 이것이다: 독립군인 이상, 그들은 단순히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최동훈의 장기였던 빠른 진행은 온전히,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을 고의로 극 안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가능했었다. 그러나 암살은 어쨌든 실제 역사를 근거로 한 영화다. 그는 인물들을 지금까지처럼 멋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을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B급 헐리우드 영화마냥, 그리고 지금까지 좌절한 수많은 경성시대 영화처럼 진부하고 통속적인 폐허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갔는가?
놀랍게도 그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의도적으로 호흡을 빨리 가져가거나 이야기의 건축물을 촘촘히 쌓는 대신, 그저 이야기의 스피드를 늦추기만 한 것이다. 안옥윤과 속사포와 황덕삼은 타겟을 죽이기 위해 경성에 도착한다. 타겟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하와이 피스톨을 고용한다. 염석진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경성으로 향한다. 경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는 독립군이 작전을 실행하는 장면을 퍽 이른 시간에 보여준다. 이것은 호흡이 빠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순조롭게 이야기가 진행된 나머지 필요없는 장면을 걷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독립군의 암살작전 장면에 이르자, 이러한 장르에서는 당연히 등장했어야 했던, 그러나 영화가 그 때까지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시대의 개입이 시작된다. 요컨대 얼기설기 짜인 이야기의 건축물 뼈대에 우연성이라는, 지금까지 최동훈 영화에서 깊게 사용하지 않았던 시멘트를 들이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시멘트가 부어지는 순간 영화는 문득 진지해진다.한 가지 예를 들자. 안옥윤의 사건을 보며 범죄의 재구성을 연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둘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혀 유사하지 않다. 박신양은 필연적이지만, 전지현은 우연적이다. 박신양은 자신을 퇴장시킬 수 있었지만, 전지현은 타인을 강제로 퇴장당한다. 그런데 이 퇴장의 순간부터, 그(안옥윤)는 갑자기 수동적으로 변하여, 이야기 속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영화의 다른 인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요컨대 영화의 절반이 지나면서부터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그동안 최동훈 영화에서 그러했듯이) 이해타산에 따라 피동적으로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일제 치하의 시대에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지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결국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와 우연의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맞긴 이뿐이다. 좀 많이 나아가면, 우리는 영화 후반부의 맥빠진 변신으로부터 식민지 국민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원초적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만약 시대에 대항해 실패했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각기 다른 해답과, 각기 다른 운명들.
최동훈은 경성시대에 대해 관객이 갖고 있는 통속성과 무게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도 매몰되지 않았고, 그 결과 상업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의미한 장치로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들, 예컨대 비현실적이라거나 뜨겁지 않다라거나 역사극으로서 부족하다는 반응은 도리어 이 영화에 대한 상찬이다. 내가 아는 한 암살은 일제시대와 독립군에 대해 한국 영화가 지금껏 내놓은 것 중, 가장 멀리 나아간 답변 중 하나다.
암살 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개봉 2015 대한민국 평점 리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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